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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아게하(あげは) 2016. 1. 10. 01:23



작가에게 조사를 철저히 잘 했다고 칭찬하는 것은


버스 운전사에게 기어를 잘 바꾼다고 칭찬하는 것과 같다


이런 단순한 기능을 잘 하지 못하는 운전사가 


어떻게 버스에 올라탈 수 있겠는가.


조사는 '빙산의 일각' 원칙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완성된 작품 속에서 조사는 10분의 1정도만 드러나야 하고


나머지 10분의 9는 가라앉아서 


작품 전체에 안정성과 강력한 힘을 주어야 한다.






 James Albert Michener (1907-1997)








p.91-95 中에서 발췌



여러 권의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효과적인 이야기 방법이라는 문제를 연구하게 되었고, 내 창작에 일관하는 몇 가지 신념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나는 나처럼 동물인 다른 인간들과 이 지구상에 함께 살고 있으며, 그 인간의 행태와 제도는 충분히 연구하고 분석할 가치가 있다.

증거를 추적해나가는 데서 이차적인 자료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성공한 소설은 인물들로부터 시작하고 그들과 함께 자라고 그들과 함께 지적정신적으로 성장한다그러나 인물들은 그들이 처해진 상황그들의 시대적 주제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위대한 소설은 작가가 외롭게 인간의 경험을 탐구하는 데서 얻어진 것이지 학술적 조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플로베르도스토예프스키제인 오스틴투르게네프그리고 헨리 제임스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물론 소설은 학술적 조사를 바탕으로 할 수 있다그러나 그러한 조사는 예술적 견지에서 볼 때 늘 이차적인 기능에 머물고 만다. 조사를 바탕으로 한 작가들이라면 졸라발자크스토이디킨스드라이저 등이 생각난다그러나 이들의 가장 훌륭한 소설들은 늘 예술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소설을 기획하는 데서 건축적 구도가 완성되지 않으면 별로 해놓은 일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어휘를 선택하는 데는 음악이 최우선이다.

소설을 이루는 중요 부분들을 예술적으로 잘 연결시키는 것이 이야기 방법의 핵심이다. '한편 어디어디에서는...'하고 장면을 바꾸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이 되었다그러나 이제 이런 방법은 너무 진부하여 오히려 그 효능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니 작가는 그 나름대로 소설의 각 부분을 연결시키는 장치를 만들어 내야 한다.

독자의 주의를 끄는 제일 좋은 방법은 훌륭한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독자의 주의를 계속 끌려면 무엇보다도 이야기에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소설의 처음 몇 장을 아주 어렵게 만들라그렇게 하여 일부 독자들은 떨어져나가게 하라. (내가 쓴 소설을 읽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분명 있다또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과도한 상징과 부자연스러운 은유는 천재작가 혹은 문예창작과 학생들이나 사용하는 것이다.

애매모호하지만 재미있는 사투리를 사용하고 싶은 욕망은 극력 억제되어야 한다사투리를 많이 사용하는 책들은 반짝 인기를 누리지만 곧 잊혀져버리고 만다.

늘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하여 글을 쓰라. 만일 어떤 책을 쓰려고 하는데 그 내용이 내게 재미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을 가능성이 높다.

창작은 엄청난 재능을 요구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저자가 아니라 작가이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증언을 해야 한다그의 작품은 꾸준하고 유기적인 전체를 제시해야한 만다.












<남태평양 이야기>의 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작가는 왜 쓰는가>

2008년 출간, 처음 읽은 이래 1년에 한 번은 다시 펼쳐 읽는 책. 

(현재 초판은 절판된 상태, 3월에 재판될 예정이라고 한다.)


소설쓰기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유능한 편집자이자 퓰리처상 수상 작가였던 제임스 미치너의 

다양한 경험과 연륜이 듬뿍 담겨 있다.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릴 적부터 나를 봐오신 할아버지에게서 따뜻한 조언을 듣는 기분이랄까.

창작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도록 붙들어 준달까. 

든든한 응원이 되어주는 문장들.






제임스 미치너는 많은 이들이 출판을 거부했던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도운 인물이다. 

전작의 실패로 고생하던 작가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서문을 썼더랬지. 

헤밍웨이는 최고라는 이유로.


거북할 정도로 긴 단어와 수식어 범벅인 소설들이 판 치던 세상에서

<노인과 바다>를 통해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음을 증명한 헤밍웨이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거머쥐었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오로지 

- 내 안에서, 내 힘으로 만들어 나가는- '스토리 텔링'이다.

그 외의 것들은 그저 껍데기일 뿐.


"내가 창작을 위해 학술적 조사에 이만큼이나 공을 들였다", 

절대로 티내지 말 것. 내세우지 말 것.

꼴이 아주 추레해진다. 

애초에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므로.


최소한 제목이나, 주인공 캐릭터의 이름 정도는 

이전에 누구도 쓰지 않았던 것들로 지을 것.


창작하는 자로서 

누군가의 스토리 혹은 인물과 겹친다는 걸 

알면서도, 알 수 있었으면서도, 갖다 쓰는 것만큼 

추접스러운 짓거리도 없으니.


앞으로 글을 쓰겠다, 

진지하게 마음 먹은 순간부터 꾸준히 이어온 다짐. 


지금은 그나마 벽을 허물고,

애정하는 분들과 터놓고 소통하게 됐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써내는 것.


스스로에게 바란다. 

부디 변하지 않길.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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